‘경아’의 안식처만 ‘별들의 고향’이 아니다.

<별들의 고향>이 처음 공개된 ‘platform 2009’전은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165번지 국군기무사령부(보안사령부가 전신인) 옛 건물에서 열렸다. 쿠데타 뒤 18년 동안 ‘철권통치’했던 박정희 소장은, 1979년 10월 26일 이곳의 국군서울지구병원으로 실려와 사망진단을 받았다. 보안사령관으로 권력을 얻어 계엄사령관 자리까지 오른 전두환은,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을 학살한 뒤 제 손으로 별 넷을 단 군복을 벗고 청와대로 갔다. 전두환을 뒤이어 보안사령관이 되고 대통령도 된 ‘쓰리 스타’ 노태우는 근년에도 국군서울지구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가 권좌에 있던 시절엔, 고문 등 국가폭력의 기억으로 음산한 이곳에서 벌어졌던 불법 민간인 사찰을 고발한 윤석양 이병 같은 이도 있었다. 이렇게 보안사는 ‘별들’의 정치적 고향(또는 무덤)이 되었다.

기무사 터가 국립현대미술관 후보지로 꼽히며 기획된 전시에서, 정윤석은 전․노가 함께 보안사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을 걸고(이 사진은 영화 <별들의 고향>에서는 볼 수 없다), 스크린에 ‘스타’들이 주름잡았던 시절들의 시사 화면과 80년대 공익 광고, 반공 애니메이션 등의 푸티지를 인디밴드 ‘파블로프’의 노래와 조합하여 보여주었다. 영화 <별들의 고향>은, 설치 작업을 촬영한 이미지를 둘러싼 삼면의 벽에 그래픽 이미지와 가사를 푼 포토그램을 더하여 완성되었다.

연대기적으로 역사를 서술하기보다, 과거의 이미지를 스치는 기억처럼 흘려보내기를 원하는 정윤석은, 벤야민이 바랐던 ‘역사적 유물론자’가 되려한다. 그는 이 작업으로 “옛 유령들”을 해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위험한 현재의 순간을 붙들어 폭파시키길 기도한다. 발악하는 듯한 노래와 날카로운 리듬으로 편집된 이미지가 함께 쏟아내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주 스크린. 또, 그 아래 자리한 작은 모니터들 속에서 번뜩이는 섬광과 그들을 잇는 점등선은 현재와 더불어 사라지지 못하는 과거의 성좌, 그 불꽃을 흩뿌리며 그린다.

글 신은실 ㅣ 서울독립영화제 예심위원


설치미술, 스크린에 담다

서울시 종로구 소격동 165번지, 오랫동안 서울 한복판에 있었지만 누구도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비밀의 공간, 2008년 과천으로 이전하기까지 37년의 시간동안 한국 근현대사를 지배했던 온갖 논란의 중심에 있었던 그 곳,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는 냉전과 독재로 뒤틀린 암울했던 한국 근현대사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정윤석 감독의 <별들의 고향>은 2009년 9월, 이 암울했던 역사의 공간에서 진행된 '플랫폼 인 기무사' 전시 중 하나였던 감독의 설치 작업을 영상으로 옮긴 작품이다. 감독의 말처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저격당한 직후 옮겨진 곳이 이 곳 기무사 병원이었다는 점과 전두환과 노태우, 두 군인 출신 전직 대통령들이 기무사 보안사령관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착안된 이 작품은 당시의 기록영상들과 애니메이션, 영화 같은 다양한 영상을 기무사 건물의 벽을 활용한 세 개의 스크린에 직접 영사함으로써 이 특별한 공간이 지닌 역사적 의미를 현재화하고자 한다. 특히 70년대를 풍미했던 멜로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제목을 고의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기를 만든 장본인인 어둠의 '별'들의 '고향'이었던 기무사라는 공간과 시대에 냉소로 가득 찬 조롱을 보낸다.

영화는 고정된 카메라를 통해 강렬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세 개의 스크린에 다양한 영상물을 영사함으로써 특별한 의미를 만들어내는 이 설치작업을 또 다른 스크린으로 담아낸다. 화면안에 잡힌 세개의 스크린 중 가운데 화면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적격 사건과 장례식 장면, 간첩 신고를 독려하는 공익광고, 남북 이산가족 현장 같은 80년대 대표적인 이미지들이 펼쳐지고 양쪽 벽을 활용한 두개의 스크린에는 각각 노래 가사와 클립 속 텍스트들의 영어 자막이 영사된다. 고정된 공간에 설치되었던 전시품을 영상으로 옮긴 이 작품은 설치 미술의 의미 즉 공간과 역사의 조우가 만들어내는 현장성 자체는 약화되지만 이미지와 사운드의 충돌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영상물 자체로 새롭게 확장된다. 과거의 역사와 현재의 시간에서 어떻게 확장되고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가를 보여주는 작품

글 모은영 l review interview book _ 단편영화를 말하다.

[먼지들_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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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1분 30초일뿐이다. 그 밤이 남긴 잔해의 기억은 짧다. 먼지들이 남긴 짧은 기억은 일종의 복합골절이다. 부러진 곳이 한 곳이 아니고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자꾸만 밤을 떠다니며 부러져버린 뼈 조각을 찾아야 한다. 문제는 부상의 부의조차 다 파악하지 못한 상태라는 점이다. 하여 고단하다 말도 한마디 못한다.혹은 하지 않는다. 염두를 다친거라고, 시력을 잃어가는 거라고, 자꾸 보았던 그것이 악몽으로 반복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잔해들 사이에서 한 마디 울리지 못하는 소리는 '우리는 너를 빼앗길 수 없다'로 읽힌다. 마침표는 보이지 않고 '위험'은 잘 읽힌다. 잔해들 사이에 서 있는 위험. 쓰레기 더미 사이에는 불안해하는 어린 동물이 하나 있다. 냉장고도 등을 돌린 밤. 얼려둔 기억 하나라도 꺼낼 수가 없다. 세로로 반짝이는 빛들. 물빛일까 먼지들인 건가. 밤이 열어둔 염두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나무라는 일련의 통로를 지나 낯선 경고음 곁에서 밤의 생존자를 만날 수 있다. 이 곳은 공사중이다. 아니다 이 곳은 여전히 그 때 그 곳이다. 유일하게 개입된 낮의 기억은 밤에 쉬는 굴삭기의 활동이다. 부서지는 것들 사이로 무한한 잔해 - 먼지들이 날아간다. 회색의 표면위에 그어진 검은 사각형은 멈춰 사유한다. 붉은 풀과 흰 물빛이 다시 달에게로 흡수된다. 물소리와 흰 덩어리. 검은 바탕 위에 불과 물이 싸운다. 물 위로 불이 떠다닌다. 파수꾼을 위한 작은 문이 연신 뭔가를 토해낸다. 물이 불과 싸운다. 거대한 싸움에 남은 것은 오직 물소리 뿐이다. 부상당한 부위는 이 곳이다. 도깨비불이 떠다니는 밤. 사각의 틈이 만들었던 문을 닫고 다시 나무라는 통로를 지나 서둘러 나간다. 혹 나가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을 뿐일 지도 모르는 거라면 출구를 찾지 못한 게다. 잔해에서 '빼앗긴 너'를 찾아내야 한다는 고단한 숙제. 숙제를 끝내기는 했지만 처방전도 치료제도 없다. 항상 그렇지만 '우리가 빼앗길 수 없는 너'를 염두 속에서 찾아내기는 했다고 해도 '너'를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는 모양이다. 할 수 없는 것인지, 아직 출구를 찾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열려있다는 문은 열려있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직 거기에 맴돌고 있고 그 떠다니는 밤이 짧으며 소화되지 못한 음식이고 작게 부서진 이야기로 남아 버렸기 때문일거다. 더한 이유가 있을 거다. 거리감을 상실한 낱말들로 밤을 유랑하는 모험은 더 깊은 주위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다고 하는 말도 분명히 있지만 그 말을 믿기에는 여기 - 그 곳은 아직 충분히 여전히 어둡다. 아쉬움과 기대를 동시에 품을 수 있는 짧은 기억에서 빠져나와 강으로 흘러갈 먼지들을 기다리는 일은 부조리가 아닐 것이라고 '그 곳'을 지나며 혼자 말해본다.

이난_영화감독, 서울독립영화제2011 예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