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구가 죽었다."

그 어떤 주제도 상관없다는 전시 기획자의 기고 제안을 받았을 때, 머릿속을 스쳐가던 한 문장이 있었다. 한 순간이었지만, 문장들은 입속을 맴돌다가 슬그머니 사그라져 버린다.

2011년, 내가 몸담고 있는 공간에서 4명의 학생이 죽었다. 그들보다 먼저 굶주림과 병마와 싸우던 한 졸업생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같은 공간, 반복된 이야기에 사람들은 어지러워했고 혼란을 두려워하는 이들은 이 비극에 말들을 덧붙이기 시작했다. 글과 입술, 그리고 각자의 가슴으로 전해지던 불안감은 어느 덧 갈 곳을 잃은 채 방황하기 시작했다.

4명의 자살. 장례식과 학교에서 치러진 추모식을 함께하며 나 역시 분명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들로 어지러웠던 것을 기억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곁에 두고 죽음을 결심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결심을 행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이 있어야 가능한 것인가. 망자가 느꼈던 고통의 무게는 내 삶의 무게와 다른 것인가. 현재 내 삶은 그저 살아 있어 행복한 것인가. 장례식에서 보았던 친구의 영정사진을 통해, 추모식에서 학우들이 추억하던 각자의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조심스레 추측해 볼 뿐이다.

가끔씩 예술이 사회에서 어떠한 기여를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을 받는다. 아마 이러한 질문들이 나에게 주어지는 것은 작업의 성격과 작가라는 직업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역할 때문일 것이다. 2011년 한예종 사태 이후 미술계에서도 '자살'이란 이슈는 화두가 되었다. 이는 곧 젊은 작가들의 생존법이라는 결말로 쉽게 기사화된다. 그렇게 실체는 사라지고 해법만 난무한다. 어느덧 죽음은 잊혀져가고 살아남은 이들의 성토만 이어진다.

얼마 전, 젊은 작가의 고민에 대해 말해달라는 미술잡지와 동일한 주제로 열린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해달라는 기관의 제안을 받고 망설였던 건 바로 위와 같은 이유일 것이다. 주제의 호불호를 떠나, 현재 미술제도 속에서 고민했던 나의 경험들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 될 수 있을지 모른다고도 생각해봤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난 위의 제안들을 정중히 거절했고 침묵을 지켜야 했다.

왜 그랬을까. 친구들이 죽기 전 자신 있게 성토할 수 있었던 이 사회의 문제들이 왜 지금에야 나 자신을 비겁하게 만드는 걸까. 상황은 변한 것이 없고 증상은 더욱 심각해졌다. 그러나 말을 꺼내는 데 난 분명 주저하고 있었다.

2.

따라서 이 글엔 새로운 결말도, 놀라운 성찰도 없다. 세계의 도덕에 대해 첨언하려면 내 안의 윤리를, 삶의 밑바닥을 직시해내야 한다. 살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의 마음을 이용했는지, 고해성사부터 시작하자면 끔찍한 일이다. 용산을 비극이라 말할 순 있지만, 망루에서 불길에 죽어갔던 희생자들의 고통을 안다고 할 순 없다. 이렇듯 오늘날의 세계에서 위선을 이야기하기는 쉽지만 위악을 행하는 데는 남다른 용기가 필요해졌다.

누군가 나에게 2009년 용산이 무엇이었냐고 되묻는다면 단호하게 '무덤'이라 답할 것이다. 모든 이들이 슬퍼하지만 진정 용서를 빌 수는 없는 곳. 당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서 내 삶의 죽음을 목격해야 하는 ‘용산’은, 자기 존재의 이유를 끊임없이 질문해야만 했던 우리들에게, 그렇게 살아남은 이들의 무덤이 되어버렸다. 아파트 건설 현장, 척박한 흙더미를 거닐며 숨찼던 늦은 밤, 누구나 쉽게 이야기하지만 쉽게 부정할 수는 없었던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버려진 돌, 꺾어진 나무, 흔들리는 바람 소리. 늘 마주쳤지만 스쳐 버려졌던 일상의 조각들을 카메라로 담기 시작했다. 용산의 기억이 가져다준 삶의 변화는 '당연한 것'에 대한 의심이었다. 기준이 바뀌었다.

동시에 내 작업들은 무척 어두워졌다. 세상의 뒤틀림을 다 이해한다 말할 순 없지만, 풍경을 찍으면서 아웃 포커싱밖에 할 수 없는 내 자신의 무기력감에 대해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형상보다 사물에 집중한다. 정직한 묘사에는 정직한 신념이 필요하다. 적어도 미술에선 그게 가능하다고 믿어왔다. 하지만 내가 몸담고 있는 이 세계는 동일한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곳이다. 오늘날 현실에 존재하는 왜곡과 감각의 자기장은 개인의 단순한 성찰만으론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날 밤, 망루가 무너지기 직전 그 안에서 누군가는 살기 위해 몸부림쳤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망자는 말이 없지만, 그들 역시 살고 싶었을 것이다.

3

친구가 죽었고, 예술가를 꿈꾸던 동료들이 죽었다. 그 중 한 친구를 기억한다. 영화를 전공하던 그녀는 "미술 작업을 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나는 "미술은 그냥 하시면 되는 거"라고 쉽게 대답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위악을 떨고 싶었던 것 같다. 나도 지금 힘들게 버티고 있는 거라며 그녀에게 위세를 떨고 싶었던 것 같다. 이 무미건조한 대화가 우리의 마지막이 될지는 몰랐었다. 그렇게 그녀는 내 곁을 떠나갔다.

그 날의 마지막 기억을 죄책감으로 간직하고 싶진 않다. 난 그녀의 고통을 전부 다 알지 못한다. 아마 그녀도 역시 내 삶의 고통을 다 알진 못할 것이다. 자기 안의 무언가를 끊임없이 증명해내야 하는 예술가의 삶이 혼자 감당하기엔 버거웠을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들이 사회적 커리어로 이어져야 살아남는 제도의 한계 역시 힘에 부쳤을 것이다. 나 역시 같은 질문을 통해 죽음을 가늠하던 때가 있었고 매일 밤 학교 옥상에 서서 세상을 내려다보던 때가 있었다. 아마 죽을 용기가 부족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전쟁터 같았던 내 삶에 연민이 부족해서도 아닐 것이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지금, 친구들의 죽음에서 지난 날 학교 옥상에서 질문했던 시간들을 돌이켜 본다. 늦은 여름, 긴 침묵의 시간 속에서 발견한 건 무엇이었을까. 분명한 것은 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도 빛은 존재한다는 사실. 우리가 어둠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는 건 그 안의 빛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떠나갔지만 기억한다는 건 우리가 여전히 그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걸 증명한다. 그리고 나 역시 그녀가 비워준 자리에 홀로 서있는 것만은 아니다.

‘파동, the forces behind’ 에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