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97년 IMF를 거치며 한국사회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체제가 당연해지고 그에 따른 사회 전반의 갈등이 증폭되어 왔다. 사회 전반에 비정규직이란 단어가 고착화되어버린 오늘날,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숨죽이는 청년세대를 일컬어 <88만원 세대>라 정의했던 ‘우석훈’이란 존재 역시 경쟁 체제 안에서 배제된 이들을 그룹지어 관리해야 하는 권력의 요구와 맞물려 호출된 것이라 믿는다.

모두들 알다시피 2000년대 이후 한국 미술계는 큰 폭으로 변화해왔다. 1990년대 후반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생겨난 비엔날레, 대안공간의 등장과 IMF를 기점삼아 유학파를 중심으로 한 젊은 작가군이 형성되었고, 미술관, 갤러리들이 앞다투어 이들을 수용하면서 기존 미술계 지형을 대폭 변화시켰다.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기본적인 시장논리뿐만 아니라 80년대 민주화 이후 90년대 자본의 풍요로움 속에서 ‘집단’보다 ‘개인’을 우선하는 새로운 사회 질서가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러한 흐름들이 곧장 미술 시장의 확대를 가져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화산업과 부동산 시장으로 대표되는 투기성 자본 중 일부가 미술로 흘러들어와 시장의 규모를 키웠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실제 2000년대 시장에서 큰 폭의 상종가를 쳤던 대부분의 작품들이 근대 미술품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것을 상기시켜보면 당시 아트페어 및 옥션등이 주도한 미술시장의 변화들은 새로운 담론의 수용과 작가라는 생태계에서 출발하기보다 금융상품으로서의 미술이 확대된 신기루에 가깝다. 90년대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포스트모던 논쟁의 결과들은 기형적인 미술 시장을 경계하며 ‘대안공간’이라는 새로운 질서를 탄생하는데 기여했지만, 이러한 시장과의 괴리감은 대부분의 작가들이 사회공적기금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아이러니를 낳게 된다.

2.

“자기계발하는 주체가 지닌 불안하고 끈덕진 자유에의 욕망이야말로, 지식기반 경제란 것에 숨겨진 윤리학 즉, 지식기반경제가 일하는 주체를 종속시키고 주체화하는 가장 탁월한 테크놀러지였다.” (자유의 의지, 자기 계발의 의지, 2009, 서동진)

조선일보는 2008년 대학을 갓 졸업하거나 아직 작품을 공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던 실력 있는 젊은 작가들에게 그들의 작품을 판매하고 선보일 기회를 제공하여 미술시장 작동 원리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 아래 ‘아시아프’전을 선보였다. 30세 이하 작가 2,050여명이 응모했고 출품작 2,300점 중 1,500여 점이 판매됐다는 예상을 깬 수치와 더불어 아직 미술시장에 본격 진입하지 않은 신예 작가들의 전시 행사임에도 열흘간 5만6,926명의 관람객을 불러 모아 미술계에 큰 충격을 던져준다.

이처럼 전시와 아트페어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던 ‘아시아프’전은 작품 옆에 작가 스스로 정한 작품가격과 주최 측이 정한 감정가를 함께 기재하여 관객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했다. 하지만 당시 전시 인턴으로 참여했던 지인의 고백에 따르면 이러한 주최 측의 감정 기준에는 홍대 서울대 한예종등 특정 대학들을 A급 수도권을 B급, 그리고 지방의 대학들을 C급으로 분리해서 작품 평가 가격에 차등 적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결국 자본의 서열화가 학연과 연결되는 한국사회 레토릭보다 더 흥미로운 지점은 대중과의 소통을 꿈꾸는 이 새로운 미술 행사의 두 가지 핵심이 바로 ‘작품 소장’과 ‘교육’이라고 밝힌 유진상 당시 총감독(계원조형예술대 교수)의 설명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 야심찬 전시 기획의 외형적 수치만 놓고 보자면 그 결과는 성공적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기존 ‘교육’만을 담당했던 미술 대학들의 교수그룹과 보수적인 대학 시스템 속에서 기성사회에 진입하려는 학생그룹 서로간의 시차가 너무나 벌어져 있고, 이제 다시는 회복불가능하다는 것을 재확인시켜준 셈이다. 그리고 그 틈을 보수 언론과 자본 세력이 적절히 찾아들어와 남들 보기에는 ‘공평’한 장사로 포장한 상징적인 담합 사례가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에 빗대어 작가 정서영은 “우리 시대의 작가 성장 모델이 ’step by step‘이었다면 최근의 젊은 작가들에겐 ’전략과 전술‘이 더 중요해진 듯하다.”고 언급한다.

위와 같은 지적처럼 이제 미술 대학사회에서 작가의 진정성이란 기성세대의 애증처럼 취급되어 버리거나 심지어는 그 본래의 미덕조차 쉽게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가 도래했음을 의미한다. 이미 상당수의 학생들은 미술을 숭고의 대상으로 묶어두려는 자신의 스승을 제치고, 자신의 능력을 즉각적으로 미술계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툴로서 학교를 대상화하고 있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단지 미술뿐만 아니라 현재 모든 대학사회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거니와 ‘인문학의 위기’라고 회자되는 일련의 사건들에 내재된 핵심이기도 하다.

여기서 그 명확한 예로 미술평론가 임근준이 퍼블릭 아트 (2010.1월호)에 기고했던 <대학 졸업을 앞둔 예비 작가들에게>라는 이름의 리스트업(list-up)을 주목해보자. (글쓴이의 표현에 따르면) 대학 졸업 철을 앞둔 예비 작가들에게 선배로서 당부의 말을 부탁받고 쓰게 된 이 글은 현 미술계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평론가로서 예비 작가 그리고 젊은 작가들에게 아쉬움과 미래의 건승을 기원하는 고급 ‘뒷담화’이다. (한편으로는 훌륭한 자기관리 지침서이자 어떤 의미로서는 험난한 약육강식의 미술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전략서이기도 하다) 차후 이 글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다시 포스팅되었고 그 내용이 ‘핫’한 만큼 상당한 댓글과 트랙백 등을 통해 인터넷 상에서 즉각적인 반응을 불러왔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이 글의 흥미로운 지점들은 글쓴이의 재능과 글을 소비하는 주체의 욕망이 교집합되면서 나타난다. 형식적으로 평이한 리스트업의 모양을 취하고 있지만 이 글을 소비하는 주체의 반응은 마치 몇 년 전 한국사회 2-30대 직장인들에게 영감을 주었던 책 <아침형인간>의 소비 열풍과 비슷해 보인다. 1999년, 서울대 출신 작가 한젬마의 <그림 읽어주는 여자>가 당대 미술에 투사된 한국 사회의 보수성을 보여주었다면, 2006년 낸시랭의 <비키니 입은 현대미술>을 거치면서 미술은 관조와 관음의 대상으로 확장되었으며, 2010년 총 59개의 조항으로 구성된 임근준의 리스트 업은 (처음 기획과 달리) 욕망을 예술의 원동력이 아닌 성공의 수단으로 드러내는 주체의 발견을 보여주었다. 이는 한국 미술계에도 서동진이 지적했던 신자유주의 자기계발담론이 도착했음을 보여주는 징후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다.

결국 현대 미술이 개념화되고 작업들 간의 절대적 우월성이 사라진 포스트모던 시대, 작가그룹에는 일종의 평등주의가 존재하지만 실상 작가들의 사회적 위치엔 여러 단계로 계급들이 나뉘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계급을 나누는 기준은 앞서 제시한 아시아프의 기준들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자본을 투여하여 비-물질적인 생산 활동을 지속/담당하는 작가의 사회적 위치가 가져다주는 모순됨에서 출발하지만, 결국 이와 같은 인정투쟁 속에서 포섭된 각자의 심리에는 ‘예술 앞에서 평등’이라는 왜곡된 판타지 역시 작동했음을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판타지들은 ‘자본에서 자유를 획득하는 것이 계급’으로 귀결되는 상상력의 빈곤을 초래한다.

70년대 신자유주의가 글로벌한 이슈로 부상한 이후 오늘날 세계적 담론과 정책들은 ‘자유’라는 보편적 가치를 강조하지만, 여기서 언급되는 대부분의 ‘자유’는 자본축적과 병행되거나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과 관련된 경우에만 한정지어 그 의미가 축소되어왔다. 하지만 금융의 세계화가 가속화되며 주식보다 더 수익성 높은 상품 가치를 지닌 미술작품의 위상 역시 높아져갔다. 이처럼 금융권에서 쏟아지는 여러 가지 파생상품들과 그것을 소비하는 새로운 컬렉터 층이 형성되면서 미술시장의 확대는 국제적 현상으로 머물지 않고 국내로 파급, 확산되기에 이른다. 더불어 딜러가 미술계를 움직이는 파워맨으로 등장하게 되면서 아트페어를 바라보는 기존의 큐레이터, 비평가, 작가들 역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다.

이와 같은 현대미술의 체제 변화에 맞서 ‘자유’라는 보편적 개념에 대응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의 저자 데이비드 하비는 자신의 책에서 ‘좋은 자유’와 ‘나쁜 자유’를 구분한다. 그는 대안을 위해 권리를 강조하기에 앞서 진보적 권리와 보수적 권리를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자본의 논리 앞에서 보편적 가치의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3.

해방 이후, 숨가쁘게 달려온 한국의 근현대사 속에서 2000년대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는 아직도 우리사회의 절차적 민주주의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뇌리에 각인시켜 주었다. 그리고 2007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끝으로 <국민성공시대>라는 정체불명의 슬로건을 앞세운 보수 세력이 정권을 차지한다. 신문지상에서 언급하는 파시즘의 부활과 공안정권이라는 단어의 등장은 미네르바, 촛불로 대표되는 어떤 형태의 정치적 저항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현 정권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정치권이 “민주화 세력 대 반 민주화 세력”이라는 지루한 헤게모니 싸움을 하는 동안, 2009년 용산참사를 통해 이제 삼성을 필두로 한 자본 세력들이 국가 체제를 초월하는 권력으로 등장했음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

“삼성 비자금 의혹 사건을 수사중인 조준웅 특별검사팀이 고가 미술품 보관장소로 지목된 용인 에버랜드 일대 창고들에 대해 21일 전격 압수수색을 벌여 미술품을 대량 발견함에 따라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인 홍라희 씨가 비자금을 이용해 구입한 것으로 폭로된 미술품의 실체가 드러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겨레 2008-01-21

2008년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으로 인해 삼성 비자금 전모가 밝혀지고 “비자금으로 600억원대 고가 미술품들을 구입했다”는 추가 폭로가 이어지자 홍라희씨가 관장으로 있는 삼성 리움은 잠정적으로 폐쇄 지경에 다다른다. 이미 스케일의 면에서 대지미술을 압도하고 언어적으로 공무원의 수사를 능가하지 못하는 한국사회에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리히텐슈타인의 <행복의 눈물>은 삼성 이건희 일가의 부도덕성과 맞물려 그 본래의 작품 의미를 넘는 초기호로 작동한다.

이러한 시대적 갈등 앞에서, “유학을 다녀오고 민중미술의 다음 세대라는 거리감 때문에 (중략) 동시대 한국 미술계 한 끄트머리에 불안하게 안착할 수 있었다”<출처 : 저널 볼 10호, 한국미술의 ‘비판성’과 작가의 ‘관심’>는 박찬경의 자기고백을 오늘날 젊은 작가들은 주의 깊게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박찬경, 고승욱, 배영환, 조습 등으로 대표되는 ‘포스트 민중미술’ 작가들의 지난날의 성과와 진정성을 왜곡해선 안 되겠지만, 배영환의 경우 작품 중 일부가 삼성 리움에 소장 중이라는 사실은 오늘날 우리 세대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나는 배영환의 작품 세계가 ‘한국 근대성의 압축’이라는 박찬경의 평가에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 80년대 독재정권과 반민주세력을 향해 비판했던 그들의 문제의식이 90년대 IMF 이후 등장한 자본권력들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연결되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이들 대다수가 김대중-노무현으로 이어지는 지난 정권 10년간 상당부분 공적자금과 직간접적인 사회적 비용을 통해서 작가로 성장해왔고, 공공미술이란 범주 안에서 자신들의 역할을 다하며 젊은 작가들에게 민중미술 이후 새로운 지형적 토대를 마련해주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 공공미술이라는 범주아래 활동했던 작가들 대다수가 전용석의 발언처럼, “민주화를 거친 우리의 공공성은 가짜였음”을 재현하는 데 그쳤다면 우리 세대는 이제 무엇을 질문해야 할까.

포스트 민중미술 작가들은 민중미술 이후 척박했던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비평적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공적자금 지원을 통해 성장한 사회적 책임감만큼, 공공이란 이름 아래 확보했던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자본의 불평등이란 문제의식으로 쉽게 연결시키진 않았다. 그리고 이처럼 공공이란 이름 아래 포착되지 않았던 한국사회 개개인의 욕망들은 2012년 우리 사회 대다수의 상대적 박탈감과 동시에 끊임없는 자기 성장 욕구로 부메랑되어 돌아온다.

4.

진리 권위 그리고 수사적 유혹 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없다. 가장 부드러운 혀를 가졌거나 발랄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권력을 갖는다 – 포스트 모던의 조건 (postmodern condition) 이글턴(terry eagleton)

2012년 5월 1일, 메이데이를 기념하여 ‘총파업’이라 불리는 문화행사에는 젊은 문화예술인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며 거리행진을 벌였다. 이 행사의 주체였던 예술인들은 “상상력에 밥을”이라는 구호를 전면에 내새웠지만 쌍용차 대책위와 강정마을 활동가들과 같은 사회적 이슈와 연대하며 즐겁고 유쾌하게 집회를 마쳤다. 이 날 집회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적으로 남았던 장면은 인도를 따라 이동하던 시위대가 플라토 갤러리 앞 삼성생명 건물 광장에 들어가 임시 점거를 하는 순간이었다. 사유지가 공유지가 되고 자본의 논리가 공공의 논리와 겹치는 순간, 서로가 원형을 그리며 노래 부르던 평화 활동가들과 갤러리를 보호하기 위해 서있던 전경들의 인의장막 그 사이에서 갤러리에 걸려 있던 배영환의 전시 현수막은 그의 작업 <유행가>만큼이나 무척 멜랑콜리해 보였다.

97년 IMF 이후 금융 노동시장 변화과정에서 서동진이 말하는 ‘자기 계발하는 주체’의 형성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기존의 관습화된 사회를 비판하고 자유를 꿈꾸는 개인 주체성의 논리와 겹쳐져 있다. 결국 현실의 경계란 각자가 규정해놓은 가정들이 반복되어 나타는 것이다. 2008년 <행복한 눈물>로 퇴장한 삼성 리움은 2년만에 <미래의 기억들>이라는 슬로건으로 우리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2012년, 현재 이 세상에 벌어지는 모든 현상들을 개인의 힘으로 껴안으며 두 발 딛고 서있기엔 모든 것들이 반어법처럼 느껴진다.

작년 여름, 강정마을 투쟁을 다뤘던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잼다큐 강정>은 사회적 제작이라는 이름으로 제작되어 올해 초 관객들을 만났다. 이 영화의 제작에 연출 중 한명으로 참여했던 나는 <잼다큐강정>이 삼성물산에서 후원하는 2012 환경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마냥 기뻐할 순 없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의 시공사가 바로 삼성물산이지 않은가. 하지만 이러한 아이러니를 통해서 내가 새롭게 얻게 된 것은 마지노선이 어디까지여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 아니라 그 다음 행보가 중요하다는 깨달음이었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겐 ‘더 나은 질문’보다는 ‘구체적인 다음 단계’가 필요하다.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는 언제나 그 단어의 실제 의미보다 더 크게 소비되어 왔다. 지난 10년간 진보적인 미술가들이 열렬히 구애했지만 버림받았던 그 공공이란 이름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미술의 공적인 역할이 자본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세대에게 남겨진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