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lking-magazine _ iusse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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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기 3장의 사진이 있다. 그 중 1)은 1987년 6월 민주화 대투쟁 당시 현장을 기록한 보도사진이며 2)는 최병수의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가 대형건물 전면에 설치되어있는 전경사진이다. 나머지 3)번의 경우 시청광장에서 “be the reds"라는 로고가 새겨진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은 한 청년이 피 흘리고 있다. 제목은 <습이를 살려내라>이다. 성격들을 간단히 나눠보자면.

보도사진(기록) - 걸개그림(재현) - 연출사진(패러디)

일반적으로 작품을 분석할 때 이런 식의 접근은 꽤나 지루한 방법론이지만, 앞으로 이야기할 부분들을 위해 잠시만 참아주길 바란다. 이 글에서 이러한 형식적 차이들을 먼저 언급한다는 것은 곧 이어지는 이미지들의 공통점을 이야기하기 위함이다. 그 공통점이란 故이한열 열사의 피 흘리며 죽어가는 모습, 그리고 뒤에서 그를 부축하는 한 청년의 고정된 시선이 느껴지는 한 장의 보도사진에서 시작한다.

수잔 손택이 자신의 저서에서 “사진은 근본적으로 슬픈 매체에 가깝다.”라고 고백한 것처럼 이 보도사진은 1980년대 한국사회의 대변하는 슬픈 자화상들 중 하나이다. 이 한 장의 사진은 그 시대 남겨진 동시대인들에게 ‘상처’이자 ‘상징’으로써 자리 잡게 된다.

빠져있는 메아리.

최병수의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앞선 보도사진을 의식하고 만들어졌다. 이 걸개그림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열이를 살려내라’라는 구호이다. 그 구호 너머 죽어가는 이한열의 모습이 배경으로 비춰진다. 흥미로웠던 사실은 원본사진의 표정과는 달리 이한열의 피 흘리고 있는 모습과 부축하는 청년의 얼굴이 좀 더 험상궂거나 심하게 일그러져 과장되어있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과장법은 이 걸개그림이 요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추측하게한다.

여기서 당신이 '이한열'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배경지식이 전무하거나, 혹은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라고 가정해보자. 만약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처음 접하는 이한열의 이미지는 ‘독재에 맞서 싸우다 희생된 선각자’보다는 ‘공권력에 희생된 개인’으로써 먼저 다가올 것이다. 사실 이러한 작품의 구성 방식은 구호가 가지는 선동성만큼이나, 앞서 언급했던 나머지 청년의 분노하는 인물 표정에 더욱 집중하게 만든다. 이러한 집중력들은 그 집단의 연대감과 소속감을 더욱 더 공고하게 만들어 준다. 당시 민중 미술의 전반적인 형식들이 화이트큐브를 벗어난 공공장소와 벽화 걸개그림 형식 등으로 활발히 제작되었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최병수의 걸개그림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이러한 연대감을 위한 훌륭한 '도구'일 것이다. 다만 '전체'를 위해 '개인'을 탄압하고 희생시켰던 공권력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운동권 진영 역시 이러한 ‘영웅주의’를 통해 그를 정치 도구화시킨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만약 이한열이 되살아나 그 자리로 돌아온다면 모를까. 이 걸개그림 속에 ‘생략된’ 그의 실제 ‘목소리’가 궁금하다.

‘습이’는 정말 아파서 저러는 걸까?

조습의 <습이를 살려내라,2002>로 넘어가보자. 앞선 세대에서 이한열을 내새워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고자 노력했던 것에 반해 조습의 경우 이한열을 지운 바로 그 자리에 자신을 등장시켰다.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던 앞선 세대의 비판적 시선과 조습의 입장은 동일해보이지만 역사의 무게감 앞에서 ‘사실’을 가공하는데 인색했던 선배들과는 차별점을 보인다. 단순 역사를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역사적 인물을 동시대의 작가 자신으로 ‘스위치’시켜버리는 그의 ‘담대함’은 흔히 포스트-민중미술이라 명명되는 젊은 작가군들의 그 시작을 알렸다.

흥미로운 것은 조습의 <습이를 살려내라> 역시 관객들의 머리 속에 최병수의 <한열이를 살려내라>가 없다라고 가정할 때 이 작업 속의 ‘습이’는 다만 ‘캐릭터’로 머물 뿐이다. 동시에 <습이를 살려내라>는 독립된 또 하나의 작업으로 보일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작업의 성격을 패러디라고 규정하는 이유는, 그 속성상 원전을 기대어 등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원전에서 출발하되 어느 순간에 이르러, 과감한 ‘이별’을 선언할 때야 말로 패러디의 힘은 극대화된다.

<습이를 살려내라>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그 ‘이별’을 잘 해냈기 때문이다. 조습은 ‘이별’을 신파가 아니라 역설로 풀어낼 줄 아는 재능을 가졌다. 이 작품에서 피 흘리는 ‘습이’가 입고 있는 저 붉은악마 티셔츠를 주목해보자. 이 작품의 제작년도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인 것을 볼 때 시청 앞 “be the Reds!"라는 로고가 박힌 티셔츠의 재등장은 심상치가 않다. 게다가 놀랍게도 작가의 포즈는 1987년 당시 이한열의 모습을 연상시키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상황의 아이러니는 1980년대와 2000년대 이십년의 시간을 엮어주는 동시에 관객들에게 끊임없는 가치판단을 요구한다.

이러한 아이러니를 던져준 채, 작품 안에서 조습은 종종걸음걸이로 빠져나가 버린 듯하다. 여기서 작가의 존재가 사라졌다라는 말은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어보인다. (분명히 작품 제목에서부터 자기의 존재를 분명히 명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난 '습이'가 작가의 정체성 보다는 익명성을 대변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이러한 주장은 순전히 내 개인의 경험에서 출발한 것이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작업에서 작가가 주장할 수 있는 위치(마스크청년)가 분명히 있었음에도, 죽은 시체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그를 증명한다. 이러한 작가의 선택은 관객들에게 작품 안에서 많은상상을 가능케한다.

작가의 자기 주장을 감춘 이 작품에서 남겨진 것들은 이한열에 대한 기억, 시청 광장, 2002년 월드컵,그리고 피 흘리는 붉은악마(습이) 정도로 요약 가능하다. 여기서 발생하는 기억들의 우선순위에 따라 그 내용의 결은 더욱 풍부해질 것이다. 그에 따른 관객들 스스로가 챙겨가는 사고의 층위도 다양해질 것이다. 하지만 관객들이 작품 속의 저 ‘붉은 악마’ 티셔츠에 적힌 “be the Reds!" 바라보며 지난 날 우리 사회를 억눌러왔던 ‘RED컴플렉스’의 기억들을 상기 시킬 수 없다면, 2002년 시청광장 앞에서 조습이 연출해 낸 이 처절한 희극 속에 감춰진 비수들이 단순히 ‘웃기다’ 정도로 '웃어' 넘기게 된다. 이것은 마치 날카로운 양날의 검과 같다.

‘한열이’ 대신 ‘습이’는 아직도 유효한가?

지난 2006년 붉은 악마는 '심심'했다. 아마 예견된 일일 것이다. 말 그대로 '예견된' 자본과의 결합은 4년마다 돌아오는 우리들의 축제를 심심하게 했다. 또한 붉은악마의 '출현'이 우리 사회에 선물했던 ‘광장’이란 공간은 현재 좌우이념에 극점에 서있는 사람들의 성토의 장으로 변모했다. 게다가 ‘습이’는 2002년 이후로 자취를 감췄다. 이 모든 현상들은 긍정과 부정을 동반한다.

아마 우리에게 ‘ 2002년의 습이’가 소중했던 까닭은 ‘한열이’가 ‘습이’로 윤회(輪廻)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역사는 잔인한 법, ‘습이’는 또 한 번의 죽임을 당한다. 2002년 그 숨 막히는 축제의 계절, 시청 한 편에서 ‘습이’는 알수 없는 이유로 조용히 죽어갔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그를 방치했던 무관심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했다. 아마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이런 도덕불감증이 ‘습이’를 보내며 ‘남겨진 우리’를 더욱 더 부끄럽게 했을 것이다.

이제 ‘습이’는 시청 광장 앞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럴 것이라 믿는다. 기다리지 말자. 죽은 자는 말이 없어야 하고, 산 자들 역시 언제까지 죽은 자의 ‘등꼴’을 빼 먹으며 살아가려 해선 안 된다. 귀신이 아닌 이상 말이다.